교육/에세이2006/04/23 08:11

이번 중학생의 두발 자유화 시위 이전에도 계속해서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되어 왔었다.
학생들의 시위가 바람직한 방향이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건 우리가 기억하는 한 일제시대 때부터 계속 되어 온 것이다. 그것만 따진다면 이번 중학생의 두발 자유화를 위한 운동장 시위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작년의 모 고등학교 시위나 이번 중학교 시위가 한번 터지면 전국의 다른 학교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학교에서 거의 비슷한 불만들을 학생들이 갖고 있는 것이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획일화된 나라는 아마도 일본일 것이다. 그들은 가정교육부터 사회 재교육까지 아주 철두철미하게 일률적인 사람으로 교육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생활이 좀 재미가 없어 보이는 편이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천적인 뇌의 구조부터가 일본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된 교육을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획일화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획일화 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일본으로부터 독립한지 60년이나 지났지만 독립할 때의 사고방식이 나아진 것은 별반 없다. 학생들의 경제사정이 좀 나아지고, 학급시설과 교보재가 좀 나아지고, 급식하는 것이 나아졌을 뿐이다.

나이 70이 되신 노인이나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나 학창시절 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완전 붕어빵처럼 똑같다.

어쩜 60년간 교육이 이리 똑같을까? 참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교육부 주최의 고무동력기를 이용한 대회 개최를 갖고 30여 년간 변하지 않는 교육정책이라고 꼬집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고무동력기를 조립해 보는 것이 학습 및 능력계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교육을 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한 번 정착되면 변화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군사문화와 일제문화와 공무워니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문제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교직원은 언급하면 안 된다. 만약 발언(제안)하여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귀차니즘에서 시작한 모든 사람의 원성이 발언자에게 쏟아진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용기내서 발언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제안의 결과가 잘 된다면 즉각 잊어먹는다. 물론 실패한 것을 크게 기억하고, 잘 된 것을 쉽게 잊는 것은 사람들의 진화의 결과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본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학습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제안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대표적인 예가 90년대 말에 있었던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의 시도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가 정책을 시행하려고 했을 때 기존의 정책과 관행에 크게 달랐기 때문에 많은 교육관련 종사자들이 반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매형마져도 당시 일이 많아져서 힘들다는 푸념을 하실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의 정책은 교육적 이상과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서 옳은 것이 아니었나? 물론 그의 시도는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급진적인 것이어서 결국 실패를 하고 말았지만 그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사람이 교육부장관 자리에 올라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정책을 추진하겠는가? 결국 자기 자녀들에게 유리하게만 바꿀 뿐 아니겠는가?)

각 구성원과 지도층의 차별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과 선생들이 근무하는 교무실은 난로를 피우는 날짜부터 차이가 난다. 물론 관리의 어려움상 차이가 어느정도 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리의 어려움상 교실의 난로를 늦게 피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중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이에 대해서 질문하면 말도 안 되는 답변을 선생들이 하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분위기가 이런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와 똑같은 분위기는 군대에서도 역시 나타난다. 간부가 오면 언제나 항상 병은 기립-긴장을 해야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 문화는 일제시대의 군문화의 답습 아니었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독립 후에도 일본놈들이 군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지금도 일본놈의 딸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그러고 있을 정도니....) 미군의 군 문화가 그런 면에서는 참 부럽다.

모든 일에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관리가 간편하냐이다.
우리나라에서 교복을 너도나도 입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들의 관리가 쉽다는 데에도 큰 이유가 존재한다. 80년대 말에 교복이 다시 생겨날 때 교복을 만들면서 댄 이유가 바로 학생들을 지도하기 쉽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발단속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1980년에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나?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성인들의 장발을 정부에서 단속해 버린 사건 말이다. 왜 똑같은 생각을 학생들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중학교 때에 이발을 하고 일주일만에 다시 이발한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온 국민의 초등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을 일률적으로 잡아두는 것도 사실은 관리하기 쉽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교사들이 제각각 학생들의 개성에 맞춰서 교육시키려고 해도 윗급에서 통제를 해 버리는 것이 아니냤말이다.
또한 이렇게 고등학교들을 똑같이 재단해서 통제했기 때문에, 대학교에도 학생들의 선발권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대학교에 학생들의 선발권을 주면 전국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서 쓸데도 없는 학원같은 사설교육기관에 몰아넣는다. (학부모들과 학원에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학원에 안 보내면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해야 되느냐라는 반문을 받으면 말이 팍 막힌다. 그게 학부모로서 할 소리인가? 그런 학부모들과는 이야기할 가치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런 학부모들이 대다수다 - 그렇게 성장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지더라도.....
이제 국민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뭐 창의력을 열심히 외쳐대는 교육부가 한심스럽게 보이는 것은 언제까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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