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冊2011/06/30 02:30

숲속 나무는 숲을 볼 수 있는가?

사실상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가 처한 위치를 알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꼭 해결하고 싶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사람도 자기 위치를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수단으로 자기 위치를 알아보더라도 자기와 닮은 허상을 보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꽃다운 20대 청년이 쓴 글들을 지은이가 재해석한 것이다. 재해석이 상당히 날카로웠기 때문에 호응을 얻었고, 그래서 이후에 20대 초반 세대를 겨냥한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오게 만든 책의 원조다. 이 책의 아류 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만 부 이상 팔려 원조보다 더 유명해졌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10점

엄기호 지음 / 도서출판 푸른숲

267 쪽 / 1'3000 원

종이표지 / 신국판 / 2010.10.15 초판 1쇄 발행

ISBN : 978-89-7184-845-6

tag : 처세술, 교육, 자기계발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그저 그런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스트셀러가 대부분 그렇듯이....... 또 바로 직전에 읽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문제 있는 책이었으므로, 이 책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에 인용된 학생들 글에서는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 부족함에 대한 깊은 지은이 고뇌가 이 책의 가치있게 한다.

그런데 어떤 서평 교육 시간에 참석했다가, 이 책은 암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여서 20대는 싫어하고, 오히려 30대와 40대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 책을 중간까지 읽었었는데, 암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기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판단의 차이가 생긴 것일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이 책은 결론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나라 현실, 20대가 처한 위치에 대한 실날한 분석만 하고 있다. 20대는 이 분석이 너무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더더군다나 20대는 아직 숲 속에 있는 나무와 같아서 정확히 자기가 처한 상황을 몰라, 같은 값이면 좋은 말만 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안 제시를 독자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 더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책장만 넘긴 청춘들이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독 든 내용으로 가득찼지만, '너희는 할 수 있으니까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봐.'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니, 생각없이 읽으면 더 반가운 처방이 있기 힘들다. 문제는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독을 들이켜온 청춘들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독사과처럼 달콤한 독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독후감에서 이 문제에 대해 비판했더니 다음과 같은 댓글이 붙었다.

댓글의 글쓰기가 엉망인 것은 그냥 넘어가자.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feedback을 보면서 솔직히 좋아하고 열광하는 청춘들이 독사과를 삼키도록 그냥 놔둬야 하는 것인지 고민된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리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직업? 돈? 교육? 사랑(결혼)?.............. 사실 이런 것은 기성세대가 필요하다고 단정해 놓은 것일 뿐이다. 사실 청춘들이 원하거나 꼭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다. 그 중에 가장 흔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다음 글 내용이다.

성인은 자립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고, 즉각적인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 인생을 기획하고 계획하는 삶이 바로 성장하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 12 쪽

즉각적 욕망을 억누르는 자제력을 살펴보는 마시멜로 실험에 좋은 답을 제공하는 사람이 나중에 풍족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풍족한 삶이 성공한 삶인가? 히틀러도 살아생전에 풍족과 거대한 권력을 누리며 살았다. 조선시대 왕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왕 중에 몇 명이나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면, 큰 숫자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삶은 무엇인가? 사실 마시멜로 실험은 대학입학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만 보여줄 뿐, 그 사람이 행복한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우파는 '높은 보수만 바라고 험한 일은 하기 싫어한다고 타박을 놓는다'(12 쪽)고 하고, 좌파는 '소비주의에 물들어 자기만 생각하고 물질적인 욕망과 풍요에만 신경을 쓰지 도통 사회적 존재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13 쪽)고 한다며, 지은이는 사회가 우리 청춘들을 비판하는 기성세대의 관점이 뭔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환경에 처한 청춘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보'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심이지 이해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이해란 통제와는 달리 내가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돌아보는 작업이다.

- 19 쪽

이 말이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우파든 좌파든...(중간생략)...20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며 그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이야기 안에 20대들을 대하는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무엇을 함께할 수 있고 무엇을 함께할 수 없는가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가 없다.'(19 쪽) 라고 다시 해석해 준다.

그 뒤 기성세대가 20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성장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전제가 다 무너진 시대를 살아라고 있는 것'(25 쪽)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성세대가 성장기를 거치며 한 경험은 지금의 20대 경험과 전혀 다르므로,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인생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은 그들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견주어봐아야 한다.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26~27 쪽)라면서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흔히 젊은이들을 비판할 때 쓰는 '탈정치화', '소비주의적', '개인주의적' 같은 도덕주의에 입각한 키워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란 학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혹은 우리는 인생의 모범답안을 끊임없이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중간생략).....

(능력으로 인정받는)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바닥을 치는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나를 이렇게 몰아세워왔다.

그러나 이제 이 책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조금씩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들린다. 그렇게 많은 것을 다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좋고, 꿈이 없어도 좋고, 못하는 것이 많아도 좋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기만 하다면, 우리의 본질은 언제나 꽤 괜찮은 것이라고.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모두, 내 인생에 대해 좀 더 상상하고 좀 더 관심 갖되, 날 동정하진 마세요!

- 29 쪽


지은이는 하려는 말을 들어가는 글 '너흰 괜찮아'에서 이렇게 모두 한다.





이후 이야기는 책 본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살펴보기만 할 것이다. 읽기 싫은 분들은 여기서 그만 읽어도 좋겠고,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는 대기업에 취업하기 힘드니까 중소기업에 잠시 취직하여 경력을 쌓고, 그 경력으로 자기가 바라는 곳으로 옮기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독후감에서 지적했었다.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선 연세대학교의 '소속 변경 제도'를 거론하면서 원주캠퍼스에 다니는 학생이 입학한 뒤에 서울캠퍼스로 옮기겠다며 벌이는 일을 살펴본다. '동아리나 소모임에 가입하는 등,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을 가볍게 포기하기도 한다.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속 변경을 향한 열정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33 쪽 _자영 학생의 글)는 것이다. 자영 학생은 무소속감이 강화된다고 이야기한다. 즉 희망과 현실의 격차 때문에 삐그덕거리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 결과로 더 나아지는 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일의 근본적 이유는 대학서열체계 때문이어서, 학생들이 좀 더 높은 서열의 대학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이는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 문제이다. 심지어 김예슬 씨의 <대학 거부 선언>을 갖고 '명문대생이 아닌 지방대생이 같은 행동을 하면 누가 관심가져 주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명문대생' 김예슬과 지방대생 사이에는 동류의식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대학 진학률이 60~80%에 이르러 원하면 누구나 대학에 가는 현실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에 대해서는 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하나만 살펴보자.) 대학서열화는 인재 선별의 효율성을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이를 보강할 대안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학생은 무엇인가?.... 56~57 쪽에 쓰인 _현택의 말을 살펴보면 '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보는 대학생에 대한 인식'에 대해 대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해 현택은 (특히 유교적인 관점에서) '데리고 다니면서 자랑하고 싶은 존재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성장이 정체된 '잉여'라고 이야기한다.

20 년 전만 하더라도 '먹고대학생'은 나름의 성장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생 중에 먹고대학생은 별로 없다. 고3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졸업을 위해 토익/토플을 공부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자격증 공부, 공모전 응모, 학점 관리, 다양한 아르바이트 등등.... 온갖 것을 하는 대학생. 잠시 짬도 내어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앉아 술 한잔 기울이지도 못 하는 오늘날의 대학생이 과연 성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가? 그래서 '대학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선택권이 아예 없는 공간'(58~59 쪽)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 표현은 그냥 단지 일탈을 너무 겁낸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그토록 쌓기를 원하는 '스펙'이란 것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사회가 대학생에게 좋은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이지만,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대학생들이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며 일반적인 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하는 틀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는 '애초부터 시장은 학생들의 스펙에 관심도 없었다.'(60 쪽)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말해 스펙은 이 잉여인간의 시대에 '자기관리'라는 도깨비 방망이로 탈락시킬 놈을 찾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시장의 무능을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버린 것이 바로 스펙의 실체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하였다. 이 체제에서 시장이 정말 성공하였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을 자기계발의 화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중간생략)

체제는 완벽하게 승리하였다. 청춘을 자학하는 잉여로 만들어서 말이다. 자기를 계발하는 주체의 이면은 자학하는 주체이다.

- 60~61 쪽

이보다 더 날카롭고 분명한 비판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정확한 내용을 접하고도, 대안을 구체적으로 활자로 찍어놓지 않았다고 찾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자기 책임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원인은.... 다음의 두 가지로 생각된다.

  1.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중견기업의 몰락)
  2. 대학 진학 비율의 지나친 상승

그래서 '대학에서 더 이상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대학 자체가 이미 사람의 성장에 별로 관심이 없다.'(65 쪽)라면서 ''대학을 다닐 이유'가 아니라 '그만두지 않을 이유''(63 쪽)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물론 대학생들이 모든 것을 아이템으로 바라보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또한 아이템으로 바라보는 속물'(67 쪽)이라고 표현해 놓았지만, 이 말의 배경에 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갖고 있는 '무엇'이 환경 또는 능력의 일부분으로서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외부와 단절된 동전 같은 것으로 보느냐[각주:1]의 시각 차이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혁명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이들처럼 정치적 행동을 하건 안 하건, 선거 때 투표를 하건 안 하건 대다수 학생들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민주주의와 그 가치를 믿는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브이 포 벤데타>의 명대사를 인용하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현 정부는 억압과 통제를 하며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학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참여하지 않으면서 쟁취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초반부에 브이가 방송국을 점거하여 내보낸 대국민 방송에서 거울을 보여주며 "그 속에 비친 자신들이 우울한 오늘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학생들은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독재자의 달콤한 약속 뒤에는 자신의 영혼과 같은 자유를 팔아먹은 대중"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통해 다수의 학생들은 "왜곡된 사실을 앎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무지는 독재자의 행위만큼이나 비판당해 마땅"하며 "부조리한 사회를 보고서도 그것을 묵인한 대중의 수동적 태도는 반성의 대상"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시미의 가장 큰 의무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를 참여와 비판을 통해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77 쪽

그러나 이 글 뒤에는 '민주주의에서야말로 민중은 가장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한다. (중간 생략) 혁명과 민주주의는 민중이 주인이라며 민중의 '가치'를 한껏 추켜세우지만 사실은 민중을 '선동'하는 언어에 불과하다'(82 쪽)고 지적한다. 사실 2008년에 있었던 촛불집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기 촛불집회는 민중의 자발적 활동이 있었지만, 중간 이후의 촛불집회는 위원회라는 단체가 결성되면서 민중의 정치적 참여와 집회의 선도를 막아버렸다. 물론 이 책에서 촛불집회의 변화과정을 설명한 부분은 분명 언론 보도의 영향을 받았다. (학생은 물론이고, 지은이도 집회에 참여한 적이 적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지적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촛불집회를 이끌려고 했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은 오히려 민중의 활동, 민주화를 죽이는 역할을 했다. 뉴라이트-한나라당의 계략이 제대로 말리면서 말이다!

책 뒷부분은 그래서 '그들 모두가 사기꾼이라는 것만큼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냉소적 주체들은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새로운 가치들이 단명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89 쪽)고 지적한다. 한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태도의 접점이 바로 속물이다. 속물들은 도덕이 사기임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도덕이라는 외피를 필요로 한다. 도덕을 자기를 돌아보기 위한 윤리로서가 아니라 남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서 필요로 한다.

(중간 생략)

우리는 속물들이 들끓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도덕이 모든 비판과 단죄의 잣대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속물들이야말로 진실로 도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각주:2]

(중간 생략)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보수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이 가장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언어에서 한쪽에서는 냉소주의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물들의 윤리적 언어로 전환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간 생략)

오히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절대적인 가치로 고정해 놓고 도덕적으로 사용하다가 정치가 도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도덕'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주의자들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다.

- 94~97 쪽

다시 말해서....

촛불로 조중동을 불살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청년 실업자들이 한 달동안 폭력시위를 하는 프랑스 뿐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민주주의가 발달한 여러 국가에서 비슷한 활동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이 내용이 실려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수구의 대표인 뉴라이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부랴부랴 내놓아 청춘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던 것 같다. 




촛불문화제를 되짚어보자. 100만이 모였던 2008년 6월 10일,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이들이 정말 제대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하는가? 가장 쉬운 해답은 촛불문화제를 분산시켰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로 뭉쳐 같이 행동하는 것은 막기 쉽다. 여러분 몸이 아플 때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약물 또는 주사 한 방이면 된다. 그러나 여러분 몸속에 여러 질병이 한꺼번에 나타나면 난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촛불문화제도 100만이면 10만씩 열 곳으로 쪼개서 모였어야 옳다.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언론이나 정부기관, 자기들 이윤에 맞춰 소설이나 써대는 몇몇 언론사와 방송사 열 곳을 골라서 10만 명씩 모인다면 과연 정부와 전경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럴 때, 시민을 적군으로 보지 않는다면 대처방법은 없어진다.


옛날이 아닌, 지금 열리고 있는 촛불문화제도 마찬가지다. 시청-광화문에서만 집중된 집회.... 독재 타도던지, 한진중공업 사태던지.... 지금까지도 구체적 행동이나 변화 하나 없는 집회는 그들-보수/집권층을 안도하게 만들 뿐이다. 집회할 거면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하는 식으로 장소와 방법을 바꿔야 한다. SNS가 발달한 오늘날, 왜 한 가지 길만 걸어가려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진보가 진보가 아니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청춘들이여 분노하라. 너희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라.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을 무너트릴 계획을 세워라. 기성세대에게 뭔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그들을 무너트릴 계획을 세워라. 정부에서 무언가 대책을 세워주기를 바라지 말고, 그들을 무너트릴 계획을 세워라. 공부 못한다는 학교 선생의 잔소리를 듣고 있지 말고, 과감히 때려치고 거리로 나서라.[각주:3]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 어르신들이 있어도 당당히 자리를 지켜라. 언론에서 뭐라 씨부리면, 여러분들이 스스로 언론사를 차려라.[각주:4]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학교를 못다닌다고 타박하지 말고, 학교 전체가 집단으로 학교를 휴학해 버려라. 선생이 일제고사를 거부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학생 스스로 거부해라. 이를 학교와 부모가 뭐라 하면 그대로 집단으로 가출해 버려라. 일주일쯤 배고파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는가?[각주:5]


취직 못한다는 여러분 부모의 핀잔에 주눅들지 말고, 자기만의 세상을 열어 스스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

거부는 성장의 출발이다. 여러분이 거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거부해라.


이 책이 하는 이야기는 더 많지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기성세대가 보지 못한, 다른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ps. 학교 교육의 폐해에 대해서



  1. 『생각의 지도』 [본문으로]
  2. 이 표현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을 꽤뚫어볼 수 있다. [본문으로]
  3. 물론 졸업장은 따야 한다. 졸업장을 따는 것과 안 따는 것의 차이는 중요하다. 성취 경험은 그때가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펙을 쌓기 위한 졸업이라면 그것도 필요없다. [본문으로]
  4. 신문을 종이에 일일이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대자본이 필요하던 과거와 달라졌다. 사이트를 구축하고 글을 꾸준히 생산하면, 여러분이 직접 언론사를 꾸린다고 문제될 것도 없다. 그리고 500만 청춘이 이를 본다면, 조중동이 무서우랴~? [본문으로]
  5. 한두 명이 하는 행동은 억압받을 수 있겠지만, 여러분 모두가 한다면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