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세이2011/03/09 18:32

교육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머리 좋으신 분들이 매달려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왜인지 정책들이 수박 겉핥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주변의 한 중학교 앞에는 작년 9월부터 아예 대놓고 학원 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거하지도 않더군요. 그 이전에는 대놓고 현수막을 붙여도 하루 안에 제거하곤 했는데, 지난 2학기 때 걸린 4 개의 현수막은 지금까지도 제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최근 더 늘고 있습니다. 뭔가 커넥션의 감이 오고 있는데, 이를 포스팅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올라오는 족족 사진은 촬영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비단 학교 교문 앞 문제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원본 작성 시간 : 2011/01/18 09:55



1. 스타킹에 소개된 속독법

지난 2010년 12월 11일, 공중파 방송인 SBS의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성적 향상 프로젝트 제1탄!'이라는 이름으로 속독법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속독법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몇십 년 전부터 알려졌던 방법입니다. 속독법은 대략 10년마다 한번씩 TV에 소개되는 단골메뉴인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TV에서 속독법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책 읽는 속도가 꽤 느리거든요.

2~3분만에 읽는 것과 하룻동안 읽는 것이 같을까?

고등학교 다닐 때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어렸을 때 속독법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공부를 잘 했냐 하면 그냥 중간 정도.... 그렇다면 국어라도 잘 했냐 하면 국어도 중간 정도... 책도 많이 읽고, 시험 문제도 더 쉽게 볼 텐데 왜 성적이 좋지 않을까요?

친구에게 답변은 의외로 간결했습니다. 책장을 넘기고 첫 번째 단어를 보면 순식간에 밑의 부분의 내용까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뿐더러, 행간을 읽기 위한 사고과정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시험 보는 도중 도움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보통은 머릿속에 내용이 뒤죽박죽 되기 때문에 결국은 차분히 문제를 풀기가 힘들다더군요. 그래서 공부 내용이 비교적 단순했던 중학교 때까지는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심층적 사고를 요구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성적이 차츰 떨어지게 되더라는 것이 친구의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오히려 방해한다.

이런 이야기는 속독법이 그동안 왜 보편화되지 않았는지를 말해줍니다. 속독법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 사교육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속독법 학원이 보편화되지 않았을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없던 멋진 포퍼먼스까지 갖추고 TV에 출연?

꼬마야, 예전에 소개할 때는 이런 거 없었거던??


보통 뇌는 시각정보를 우리 의식보다 훨씬 빨리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꿈 속에서 시간이 더 빨리 가게 되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뇌가 얼마나 빨리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지요. 다만 받아들인 것은 무의식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속독법은 이러한 무의식을 의식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면 그만큼 빨리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헐리웃 영화처럼 온갖 사물에서 반사된 모습만 보고도 사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상황판단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통 책을 읽는 행위는 정보 이외의 것도 많이 전달받습니다.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에게는 의식보다 더 많은 무의식이 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단지 의식적인 일을 할 수 없다 뿐이겠지요. 책을 읽는 와중에 가장 중요한 공부는 지혜 획득입니다. 지혜는 수량만으로는 터득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것들까지 속독법으로 전달받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 성적이 좋은 학생들 중에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트위터의 님의  트윗 일부를 소개합니다.

독서의 핵심은 사색하는 시간이다.


ps. 국민MC라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차이! 유재석은 신기할 정도로 이런 삽질 프로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강호동은 1년에 한 번씩은 참여한다. 그래서 강호동은 누군가 밀어주지 않으면 국민MC가 될 수 없다. 스스로 국민MC가 되는 유재석을 강호동이 좇아갈 수 없는 차이다.

ps. '스타킹 속독법'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봤더니, 블로그, 카페, 신문기사 등에 속독법 마케팅 포스트로 완전 도배가 되었네요.





2. 춤추는 성적의 전북 장수군


학교 생활이란 것도 독서와 마찬가지로 지식 이외의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지식은 1/3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을 지식에만 촛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전남 장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민일보의 장수군 관련기사


2009년 3월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했을 때 전남 장수는 초등 6학년 영어·수학 과목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최하위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난 2010년 7월 평가결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 과목에서 미달자 ‘0’을 기록하며 ‘최상위권’으로 올라섰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제 나왔던 모교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제가 나온 국민학교는 규모가 작고, 별 특징도 없는 시골 학교였습니다. (지금은 폐교되었죠.) 제가 졸업한 그해에 교장선생님도 정년퇴임하시고,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2학기가 됐을 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도학력평가에서 학교 전체평균이 90점이 넘어 경기도에서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네 후배 한 명은 88점 정도의 점수를 받아서 반에서 꼴지라고 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부정행위를 의심해서 감사관을 파견한 가운데 재시험을 보게 할 정도였으니 그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에 대해 들려오는 뒷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밤 늦게까지 수업시키고, 학교에서 떠드는 경우 심한 채벌까지 가하며 공부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년 후, 그 후배들이 중학교에 올라왔을 때, 성적이 좋았을까요? 우리 학년보다는 성적이 좋았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1년의 엄청난 하드트레이닝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결과였습니다.


장수에서도 제 모교에서와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2009년에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뒤에 장수교육청 교육장은 일선 초중고 교장들을 불러들여 “지금까지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인다고 했던 독서, 논술수업이 다 쓸모없게 됐다. 우리도 이제부터 성적 올리는 수업만 하자”고 말했고, 이후 이 지역에는 강제 야간 자율학습과 시험대비 집중 문제풀이 등으로 수업방식이 바꾸었다고 합니다. 장수교육청과 모교의 일이 완전히 동일하네요. 결과를 다시 살펴볼 필요도 없겠죠?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일제고사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두각을 나타낸 적이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이 방법이 교육의 정론으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에 많은 연구를 해왔던 나라일수록 이런 시도는 더는 하지 않습니다. 즉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교육을 단기적으로 바라봤을 때의 부작용이 뻔하니까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각주:1]일수록 창의력이 낮다는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연구에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창의성 교육을 표방하며 일제고사를 보는 이율배반적 교육정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창의성에 대해 하나도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3. KAIST의 비극

최근 날아든 안타까운 뉴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카이스트(KAIST) 학생 중 한 명이 자살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습니다.

2008.06.21 방송된 <과학카페>를 살펴보면, 서남표 KAIST 총장은 미국 국립과학재단 부총재를 4년 동안 지내면서 미국 공학계에 '공리적 디자인' 개념을 제시하여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새롭게 만든 모든 요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설계이자 디자인이다.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다.

모든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공리적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가장 좋은 디자인을 찾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이는 경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공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남표 총장이 이야기했다는 가장 좋은 디자인을 찾는 기준 두 가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네요. 뭥미?)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은 2007년에 부임한 후 학사과정을 개혁하고,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한 학생을 선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한 학사과정 개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성적이 낮거나 만학도가 되면 큰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남표 총장이 부임하기 전에는 전부 무료였던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것은 학생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공부를 안 한 것은 학점이 낮은 것으로 이미 처벌을 받았는데, 거기다가 등록금을 추가로 내게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둘째는 모든 학사과정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을 뽑아야 합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별한 학생들은 영어를 필수로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입학할 수 있었던 영어를 못하는 학생은 다른 잘하던 과목도 모두 못하게 될 수밖에 없죠. 그정도는 뻔히 보이는 것이므로, 영어를 못하는 학생은 뽑지 않았어야 합니다. 다른 분야에 잘 하는 학생은 다른 학교에 가면 더 잘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왜 뽑아서 실력을 죽이냐는 것입니다.


결국 영어를 못하는 학생은 전반적으로 성적을 잘 받기 힘들고, 학교를 다니지 말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서남표 총장이 언어능력이 뛰어나서 미국 교육환경에 잘 적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한국의 모든 학생에게 적용한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적이 있듯이, 영어를 국내의 모든 학생에서 완벽하게 가르치기보다는 외국에 나갈 필요가 있는 인재만 1년의 여유기간을 둬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꼭 영어를 잘 해야 하느냐는 것도 의문입니다. 사실상 영어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영어가 기득권층의 자리지키기 매커니즘으로 자리잡았는데요... 그들은 조기유학을 하거나 나중에라도 심심하면 자비유학을 하니까, 장학금을 줘도 유학하기 힘든 서민이 따라갈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이죠.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영어가 그만큼 많이 사용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어떤 관문을 통과할 때만 필요한 거지요.

국내에서만 활동할 사람은 사실 전공영어, 그것도 읽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수요가 영어까지 잘 하는 사람 수요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업무도 아닌데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공무원 시험도 물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은 전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로봇을 만드는 것만 잘 하는 학생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국영수는 물론이고, 각종 소양과목에 대해서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런 학생을 뽑았다는 것은 잘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그 이후 카이스트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내 생각을 한 언론기사의 뉴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형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지만 시험을 치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자연과학대의 한 교수는 "지도교수제가 있지만, 대학원생도 아니고 아직 전공도 정해지지 않은 1학년 학부생의 학업 상담이 깊이 있게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 학생처럼 특정 분야에 재능이 출중한 그런 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좋은 학교가 사실 우리나라엔 없다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영수를 골고루 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광주과기원, 울산과학기술대학 등[각주:2] 우리나라 이공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때 가장 큰 변별력은 수학과 과학이 아니라 영어라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만약 EBS 다큐프라임의 <교육대기획 학교란 무엇인가> 10부에 소개됐던 '노는 아이들의 기적, 서머힐'(2010.12.01 방송)의 서머힐 같은 학교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서남표 총장은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식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남과 똑같은 생각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직접 경험할 기회를 주었는가?



ps. KAIST에 진학했던 많은 학생들 중에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학점이 안 좋아서 장학금을 못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장학금은 과학고등학교 출신들이 대부분 가져갔다고 하네요.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당연합니다. 과학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 1~2학년이 배우는 내용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복습인 셈이므로, 실력과는 상관없이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보다는 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남표 총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참 암담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4. 교육과 토론

이건 짧막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교육에서 토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에서 토론하고, 평가하는 과목은 없습니다. 아예 토론이란 것을 고려하지도 않지요. 논술이라고 하더라도 학원에 다니면서 틀에 맞춰진 논리전개방식을 배우기에 바쁩니다. 물론 그런 강제학습을 통한 능력 신장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진학에 있어서 토론 능력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서 토론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지 토론문화는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외국 영화처럼 그런 식으로 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포퍼먼스이고, 만약 그렇게 하는 토론이라면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절대로 유리하겠지요. 그보다는 지망하는 학과에 맞는 현실적인 토론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교육이란 것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일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나라 교육기관은 모두 천편일률적입니다. 정부 교육청의 힘이 무시무시하고, 모든 것을 학연/지연/인맥으로 유지하는, 조금이라도 예외가 있으면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일듯 싶습니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집중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결국 부와 학벌이 세습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교육방법을 다양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현행 입시정책에서 교육부가 힘을 휘두르는 짓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거 하지 않아도 사실 교육부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에 공권력을 낭비하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참고해서 읽어볼만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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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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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구에도 대구과학기술대학이 생긴다고 하네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