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冊2011/03/17 21:54

이머전스 - 10점

스티븐 존슨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328p/14900원

양장

ISBN : 978-89-349-14-563

글 쓴 날 : 2007/07/13 11:59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멋진 명제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예술.... 물론 일상생활과 사회구성에 이르기까지 적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진리를 포함하는 명제다. 그리고 이 명제는 사람과 동물의 지능, 식물의 지능은 물론이고 미생물의 지능과 인간에 의해서 생겨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설명한다.



사람 뇌에 있는 높은 지능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떻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사람 지능이 나오는 '뇌'는 '뉴런'이라는 간단한 세포로 이뤄져 있다. 뉴런은 다른 뉴런이나 신경세포와 '시넵스'라는 연결 통로로 신호를 주고 받는다. 주고 받는 신호는 전기 펄스[각주:1]다. 그러나 뉴런은 주어진 조건에 맞춰서 전기 신호를 주고 받거나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신호를 무조건 전달하는 단순한 반응을 한다. 하지만 수백억~수천억 개 뉴런이 모여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반응은 매우 복잡하며,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인격과 지능으로 나타나게 된다.


집단을 이룬 개미나 벌은 인간 뇌와 완전히 다른 형태다. 뉴런이 아니라 개체 하나하나로 이뤄져 있다. 개미나 벌 개체 하나하나가 사람 뉴런 하나보다 지능이 훨씬 뛰어나겠지만, 어찌보면 비교적 단순한 반응을 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를 살펴보면, 수백억~수천억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뇌보다 수백~수억 마리의 개미나 벌 개체로 이뤄져 있는 집단은 구성원 수가 매우 적다. 또 구성원 하나하나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속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비록 개미나 벌 집단이 사람 뇌와 작동하는 기작이 비슷할지라도 지능 수준은 훨씬 낮다.
아무튼 이렇게 단순한 구성원이 뭉쳐 개미나 벌 집단이나 사람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자기조직화라고 부른다.

개미나 벌 집단과 마찬가지로 사람 집단 또한 자기조직화 현상을 보인다. 사람이 아무렇게나 섞여 사는 거대한 도시는 누군가가 통제하지 않아도 기능적으로 세분화되어 금융 거리, 양복 거리, 재래시장, 대형유통단지, 가구 거리, 먹자골목 등, 심지어는 창녀촌까지 세분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세분화 또한 개미나 벌의 자기조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의도적인 강제 재개발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지금까지 강제 재개발로 도시를 재정비할 때마다 슬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위치만 옮겨왔었다. 슬램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 역시 인간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변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도시에는 일정비율의 슬램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도적인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자기조직화는 급기야 인터넷 서비스에도 적용된다. 웹2.0 사이트[각주:2]가 그 대표적인 예로, 우주가 성장하면서 전체가 작은 은하단을 형성하고 거기서 은하와 별로 물질이 갈라지듯이, 사람 하나하나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웹사이트 여기저기에서 집단을 이룬다. 누리꾼도 모두 비균질한 성질을 띄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을 이룬 누리꾼은 처음 사이트가 갖던 성격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이는 창발적 진화와 매우 비슷하다.[각주:3]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상태와 변화 욕구에 대한 '되먹임'[각주:4]이다. 되먹임이 되지 않으면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되먹임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용자는 다른 서비스로 옮겨갈 것이므로, 고정된 모습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되먹임은 Web2.0의 기본특성이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 기본원리와 미래에 대한 약간의 예측을 포함하는데, 이 책이 처음 저술된 때가 2001년(번역 2004년)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모습을 신기할 정도로 잘 예측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예측 일부는 틀렸지만, 전체적으로는 (책 발표 이후) 이미 과거에 일어났거나 아주 황당할 정도로 정확한 현재 모습이다.

사람의 망막 뒤쪽에는 시신경에 의해 시각피질과 연결된 부분이 있다. 여기에는 간상세포나 원추세포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빛이 맺히지 않는다.[각주:5] 맹점이라 불리는 이 부분은 직경 약 6도로 상당히 크지만 입체적인 시력으로 인해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다시 말해 두 눈의 맹점은 서로 겹치지 않기 때문에 한쪽 눈의 부족한 정보를 다른 눈이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쪽 눈을 감은 채 다른 눈만으로 이 문장의 특정 단어를 주시하면 맹점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중간생략)
우리는 정보의 부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정보를 잃었다는 느낌이나 검은 얼룩 혹은 흐릿한 부분도 없다. 뭔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위와 같이 손가락을 가지고 매우 정교한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놀라운 점은 우리에게 시각적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부족을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맹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뇌가 이 부위로부터 정보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며 공백을 채우려고 애쓰거나 애초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 다니엘 데닛의 말에 따르면 시각피질에는 이 부위로부터 정보를 받는 중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보고를 전혀 받지 못해도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정보의 부재는 부재에 대한 정보와 다르다. 우리는 자신의 맹점을 못 보는 맹인이다.
-p. 232 ~ 233

이 책은 정보와 집단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진화론, 정보통신,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권해드린다.[각주:6]
물론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고등학교나 대학교 저학년 학생이 읽으면 더 좋을 테고....
그러나 이 책은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에 전혀 흥미가 없는 분이라면 과감히 피해 가시리라 권해드린다.


ps.


  1. 길게 유지되지 않고 짧은 시간동안 변화한 뒤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형태로 이뤄진 파동 [본문으로]
  2. 사용자가 자기조직화되도록 만들어진 인터넷 서비스 [본문으로]
  3. 서비스 개발자 중에는 서비스의 특정 기능을 사용자들이 다른 용도로 마음대로 쓴다고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말은 합당치 않다.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창발적인 진화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개발자는 이런 변화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좋은 기능으로 연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본문으로]
  4. 시스템 구성원의 활동 나타난 변화가 다시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을 되먹임이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5. '빛이 맺히지 않는다'는 표현은 명백히 틀린 표현이다. 빛이 맺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빛을 느끼지 못한다'란 표현을 써야 하는데 역자가 실수한 것 같다. [본문으로]
  6.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 이외의 많은 다른 요소도 있음을 물론 주의해야 한다. [본문으로]